[불면증] 언젠가는 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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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닉네임인 [그루잠]은

'깨었다가 다시 든 잠' 이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다.

잠에서 깨어도 다시 편안하게 잠들고 싶은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닉네임이다.

편안하게 자고 싶은 마음을 닉네임에 녹여낼 만큼

내 불면증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이다.

 

 

잠은 나와는 평생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인걸까.

날 때부터 나는 잠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나는 잘 울지도 않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지만

유난히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한다.

나를 재우려고 옆에 누워서 자장자장을 하다가

부모님이 먼저 잠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학교를 들어간 뒤에도 나는 낮잠도 거의 자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수업 시간에 졸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엎드려서 몇 분간의 짧은 잠을 청한 적은 있었지만

성인이 된 뒤로는 이런 기억조차 거의 없다.

졸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낮에 잔 시간 만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괴로워서 차라리 낮잠을 자지 않는 편을 택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것이 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그 시기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암흑기였다.

내 인생이 송두리채 바뀔 만큼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의 잠을 모두 빼앗아 버린건

가까운 어떤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밤 느껴지던 묘한 이질감이 생생하다.

장례 첫 날을 마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누웠는데

깜깜한 방이 너무나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과의 이별이 너무 슬프다.

남겨진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자연스러웠을까.

속이라도 후련해졌을까.

그날 밤 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맥락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고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생각들에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눈을 감으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내가 따라갈 수도 없는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방안에서

전쟁이라도 난 것 마냥 웅웅대는 소음이 내 귓가를 때렸다.

 

밤새 뒤척이며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왼쪽으로 돌아눕고,

이불을 들췄다가 덮어보기를 반복하다가 

말갛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했고

그렇게 나는 완전히 잠을 빼앗겼다.

 

잠은 어떻게 자는거였더라.

눈에 있는 근육을 이용하면 눈을 감을 수 있고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복부를 팽창시켜서공기를 깊숙이 밀어넣었다가 

다시 천천히 숨을 내뱉으면 복식호흡도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잠은 어떻게 자는거였더라.

온갖 호흡법, 식품과 멜라토닌 섭취, 햇빛 쪼이기, 운동 등등.
잠이 잘 온다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아도
밤이 오면 눈을 감아도 정신은 또렷해질 뿐이었고
까무룩 잠이 들더라도 수면 유지가 되지 않았다.
깨어있어야 할 낮시간에는 정신이 멍하고 몸은 기진맥진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눈은 매일 새빨갛게 충혈되어 보는 사람들이 다 놀랄 지경이었고
물을 마셔도 늘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양치를 해도 쓴 맛이 났다.
그때 나는 간신히 전원만 들어오는 고장난 가전제품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전혀 잠이 이루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으로 내가 한 선택은 당연하게도 수면제였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
죽은 듯이 잠들 수 있게 해 줄 것 같은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
 
그렇게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꾸준히 수면제를 처방받고 있다.
처음에는 약을 먹으면 다음 날 오후까지 너무 가라앉기도 했고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혀가 잘 굴러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차피 못자는거,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였다.
잠은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잠이 들면 잠이 드는대로, 
잠들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대로 그냥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노력해서
처음에는 매일 먹던 수면제를 수 년에 걸쳐 서서히 줄여 나갔다.
지금은 수면제를 거의 먹지 않지만 여전히 주기적으로 처방은 받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도 나의 수면의 질은 그리 좋지 못하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다가 벌떡 일어나거나
자면서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렘수면 행동장애).
어젯 밤에도 새벽 2시에 깨서 다시 잠이 들지 못했다.
어차피 잠들지 못할거라는걸 알기에 굳이 억지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거나,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새벽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감사한 것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잠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르고 달래가며 평생 함께 가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하지만
솔직히 지독한 불면의 밤이 언제 다시 찾아올까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많다.
 
오늘밤은 부디
잠은 어떻게 자는거였더라 하는 고민없이
스르륵 잠이 들 수 있기를.
잠에서 깨더라도
내 닉네임인 [그루잠]의 의미처럼 편안하게 다시 잠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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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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