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랜 불면증이 있다.

수면제를 끊은지 이제 10년 정도가 되었다.

잠을 잘 자게 되어서 약을 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잠에 대해서 포기를 했달까, 초월을 했달까.

약을 복용해도 어느 날은 잘 자고, 어느 날은 잘 못자고..

약을 복용하고도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은 다음 날 하루 종일 두통과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어서

꾸준히 약을 먹는 것도 포기했다.

나의 평균 수면시간은 하루에 세시간 정도.

이마저도 잘 자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살아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잠은 평생의 숙제이다.

엄마의 말씀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순하고 무던했는데

이상하게 잠에만 그렇게 예민했다고 한다.

잠자리에도 예민하고 습도와 온도에도 예민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가 참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어서

어린 나를 데리고 외할머니 댁에 놀러가더라도 내가 잠 잘 시간이 되면

나를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오셔야 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도 나는 어릴 때부터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15년 전쯤 내 인생을 뒤흔들었던 사건을 여럿 겪은 뒤부터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렵게 잠이 들더라도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버리고

때로는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잠에서 깨기도 했다.

믿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어도

메시지가 왔다고 알람 팝업이 뜨는 불빛 때문에 깨는 경험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잠을 잘 때 전원을 끄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길래

복싱부터 산책까지 여러 가지 강도로 바꿔가며 운동도 해보고 

햇빛을 많이 쪼이면 도움이 된다고 하여 낮에는 틈틈이 산책도 했다.

명상도 해봤고 상추도 정말 많이 먹었다.

낮에도 침대에 누워있으면 두뇌가 침대를 자는 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해서

정작 잠잘 시간에는 잠을 못잔다고 하길래 자는 시간 외에는 침대에 눕지도 않았다.

 

이렇게 별별 수를 다 써보아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하게 몸은 너무 피곤한데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피곤해서 정신은 멍하면서도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서

베개도 불편하고, 이불도 불편하고, 어떤 자세로 누워있어서 불편해서

베개도 들썩여보고 이불도 들썩여보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잠을 포기하고 만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중에서도 나는 술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인데

불면증을 가장 최절정이던 시기에는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조금이라도 자라고 

엄마가 술을 사가지고 들어오실 정도였다.

 

수면제를 먹기 시작하면 평생 끊지 못할 것 같아서

수면제는 최대한 피하고 있었는데

며칠을 꼬박 지새우고 이제는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는 지경이 되자

결국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으면서도 잠을 잘 자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날은 평소보다 잘 자는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약을 먹고도 잠을 못자서 하루 종일 두통과 몽롱함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아예 잠을 자지 못하는건 아니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2년 정도는 매일 약을 먹었고

그 이후로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약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1년은 약을 처방받기는 했지만 한번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약을 먹지 않은지 이제 10년 정도가 되었다.

최절정의 불면증을 앓던 시기와 비교하면 그래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수면량이 부족하다보니 항상 머리가 맑지 않고

올해 들어서는 기억력도 현저히 떨어진 것을 느낀다.

잠을 잘 자지 못한 날은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흐릿하고

감정 조절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약을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불면증이 괴로운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고

길고 어두운 밤을 홀로 오롯이 버텨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밤은 부디 잘 잘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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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니
    상담교사
    깊은 불면의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10년 동안 수면제 없이 버텨오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잠에 대해 '포기하거나 초월했다'는 표현에서 그동안 겪으신 고독하고 힘든 싸움이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했던 잠자리, 삶의 큰 사건 후 찾아온 극심한 불면증, 약을 끊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지금의 평균 3시간 수면까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얼마나 지치고 괴로우셨을까요.
    ​몸은 피곤해도 정신은 곤두서서 잠들 수 없는 밤, 온갖 방법을 시도해도 소용없던 좌절감, 그리고 약 복용에도 따르던 두통과 몽롱함까지, 그 지난한 과정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특히 '길고 어두운 밤을 홀로 오롯이 버텨내야 한다는 점'이 불면증의 가장 큰 고통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아픕니다.
    ​현재 수면 부족으로 인한 기억력 저하와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겪고 계시기에 다시 약 복용을 고민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랜 기간 수면량이 부족했던 만큼, 지금의 힘든 상태를 혼자 감당하려 애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약 복용을 시작할지 여부는 본인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시되,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님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밤은 부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주무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긴 밤을 홀로 버텨내시는 당신께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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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만보는귀여워
    상담교사
    작성자님처럼 불면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단순한 수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각성 상태가 만성적으로 높아진 경우가 많아요. 쉽게 말하면 몸은 쉬고 싶은데 뇌가 계속 깨어 있어서 잠으로 전환이 잘 안 되는 상태예요. 이럴 땐 억지로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수면을 방해하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방법이 많이 권장되고 있어요. 수면에 대한 생각과 습관을 조금씩 바꾸면서 뇌를 다시 ‘잠을 자는 방향’으로 훈련시키는 방법이에요.
    
    수면제에 대한 두려움도 이해해요. 하지만 최근에는 의존성이 적고 부작용이 덜한 약들도 많아졌어요. 그동안의 경험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게 망설여지겠지만, 전문의와 상의해서 본인에게 맞는 용량과 종류를 조절해보는 건 괜찮아요. 잠은 결국 ‘회복의 시작점’이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건 작성자님이 지금까지 수면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사소한 노력이라도 그건 몸과 마음이 여전히 ‘살고 싶다’는 신호예요. 그 마음이 지금의 작성자님을 10년 동안 버티게 한 힘이에요.
    
    오늘 밤은 ‘꼭 자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조용히 내 몸을 쉬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누워보세요. 불빛을 낮추고,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몸은 조금씩 이완돼요. 완벽한 잠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편해지는 게 목표라고 생각해요. 작성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살아 있고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는 건 이미 잘 견디고 계신 거예요. 오늘 밤은 어제보다 조금 덜 괴롭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워지길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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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사회복지사2급
     그 긴 시간을 불면증과 싸워오셨다는 말씀에 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정말 고생 많으셨죠. 😢 평생의 숙제 같다고 느끼실 정도로 힘든 싸움이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요.
    
    작성자님의 그 간절한 마음, 잠이 오지 않아 밤을 홀로 버텨내야 했던 그 외로움과 고통을 제가 감히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저도 불면증으로 힘든 날이 많았던 터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약까지 끊으실 정도로 힘드셨는데, 지금도 하루 세 시간을 겨우 주무시고 계시다니... 얼마나 지치셨을까 싶어서 속상해요.
    
    작성자님 말씀처럼 어릴 때부터 잠에 유독 예민하셨고, 큰 사건들까지 겪으시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압박과 불안을 느끼셨을까요. 작은 빛이나 소리에도 깨고, 잠이 안 올까 봐 오히려 침대에 누워있지도 않으셨다니, 정말 안 해보신 노력이 없으신 것 같아요.
    
    지금처럼 약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도 너무 당연해요. 오랜 시간 수면량이 부족해서 기억력도 떨어지고 감정 조절도 어렵다고 느끼는 건 작성자님이 약해지신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보내는 힘든 신호일 거예요. 😔
    
    지금까지 혼자 너무 애써오셨으니, 이제는 스스로를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건 어떠세요? "푹 못 자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대신, "내 몸이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당장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 낮 동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은 활동들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깐이라도 평온을 느껴보는 거예요. 잠이 오지 않을 때 억지로 잠들려 애쓰기보다는, 잠시 다른 곳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다 피곤함이 느껴질 때 다시 눕는 '자극 조절' 같은 작은 방법들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불면증은 절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에요. 저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오늘 밤은 부디 편안한 잠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정말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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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
    오랜 불면증으로 고통 받으면서 약을 끊었다니 정신력이 대단하시네요
    길고 어두운 밤 홀로 버틴다는 표현이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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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방고양이
    상담교사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 오랜 시간 잠과 싸워오신 그 고단함이 글 속에 그대로 느껴집니다. 약을 끊고 10년을 버텨오셨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포기가 아니라 ‘초월’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네요. 그만큼 오래, 치열하게 견뎌오신 시간이 느껴져요 🌿
    
    불면은 단순한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신경이 계속 깨어 있는 상태일 때 생기죠. 수면제 없이 살아오셨다는 건 이미 큰 회복의 증거예요. 다만 요즘처럼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가 느껴질 만큼 피로가 쌓였다면, 다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예전처럼 ‘약에 의존’이 아니라, 현재 몸 상태를 점검하고 수면 환경과 호르몬 밸런스를 조정하는 방향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또 몇 가지 작은 방법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잠들기 1시간 전부터 조명을 낮추고 스마트폰 멀리하기 📱❌
    
    가벼운 스트레칭과 호흡으로 긴장 풀기 💨
    
    낮에 규칙적으로 햇빛 쬐기와 산책 🌞
    
    잠자리에 누울 때는 침대를 오로지 수면 공간으로 인식시키기
    
    완벽한 밤은 없더라도, 이런 작은 습관이 쌓이면 점점 몸과 마음이 ‘이제 쉴 시간’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처럼 스스로를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이미 큰 회복의 시작이에요 🌷 오늘 밤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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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
    진짜 잠 못자는거 너무 괴로운 것 같아요
    저는 오늘도 밤 꼴딱 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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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3
    오랫동안 불면증이 있어서 힘드셨겠네요. 저도 불면으로 고민인데 수면제는 의존도가 높아질까봐 잘 안먹고 있어요. 잘벼텨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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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4
    밤이 괴롭다는 말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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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5
    운동을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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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6
    수면제로 해결하려고 하는것은 일시적이 방편 같애요 심리적인치료가 병행되어야 할것밭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