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읽기 좋은 시 모음 (짧은 여름 시, 여름에 관한 시)

요즘 날씨가 정말 더운데요

바야흐로 여름의 절정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이런 여름 날이 떠오르는,

여름에 대한 시를 한번 소개해보려고 해요!

 

 

 

여름에 읽기 좋은 시 모음 (짧은 여름 시, 여름에 관한 시)

 

여름 곳곳을 적시는 사랑, 안체니

(시집 <철없이 사랑할 수 있는 천국에 가고 싶다> 수록)

 

안녕히 계세요. 사랑하는 그 음성은 잦아드는 빗소리같이 젖어있다.

이제야 살펴본다. 어제. 그제. 다시, 처음.

우리가 너무 오래 껴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깻죽지의 헤진 면을 만지작거렸다. 열증 같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파란 트럭에서 사 온 딸기를 씻어 채망에 쌓아두고

씨가 많다, 잘다, 시다 수런수런한 식탁에 마주 앉아 있으며,

향 좋고 해 밝고 좋았다 밖에 되뇌지 못하는 것을.

늦은 오후, 넌 무슨 생각을 했나.

 

제발을 외지 않으려 기 썼다. 가시 돋친 일기장을 보여준 날부터 1시간 전까지. 새로이 길들어야 한다. 2인분은 거친 표면을 문질러 닦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슬퍼 말자며 여분의 바다를 가득 따랐다. 넘친다. 사나웁게 밀려오고 있다.

 

내 이름엔 의미가 없대요. 내가 태어난 것도요.

생년월일. 모르고 컸어요. 사람과 신용을 잇는 영수증을 발급받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못 봐요.

저 향취가 없나요. 불긋한 백도처럼 어둠 곳곳을 적시는 사랑이 하고 싶어요.

 

또다시 젖어든다. 추운 물이 밀려와 한차례 둥둥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네 숨, 새벽 숲 이슬을 꼭 닮은. 내 목빗근에 잠시 닿아있던 슬픈 너의 생.

편안했을까.

 

 

 

여름에 읽기 좋은 시 모음 (짧은 여름 시, 여름에 관한 시)

 

열과,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수록)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

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나의 과수원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한다

눈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

 

 

 

여름에 읽기 좋은 시 모음 (짧은 여름 시, 여름에 관한 시)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수록)

 

채송화의 생활을 봅니다

 

채송화 옆에 앉아 있으면 좋아서 나는 자꾸 웃는데요. 괜히 채송화 주변의 흙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봅니다 채송화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나는 자꾸만 더 그러는 것입니다. 죽고 싶었던 마음들, 저 구름을 밀어올린 무심한 마음들, 나 없이도 더없이 아름다울 세상들, 이제 어떻게 살지라고 웅성거리는 모든 것들과 노래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거기다 두고 올 수는 없잖아요

 

나의 부음을 채송화가 제일 먼저 받아보았으면 싶어서

문상객으로 채송화가 와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서

 

채송화의 생활을 하루치의 밥으로 먹습니다

 

좀 간절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깊어지지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여름은 그런 거니까

 

 

 

여름에 읽기 좋은 시 모음 (짧은 여름 시, 여름에 관한 시)

 

낭만적 여름, 정

(시집 <마침내 멸망하는 여름> 수록)

 

여름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연습을 했어

 

여름이 올 때마다 너를 사랑하고 싶어 파랑이 가득한 세상은 아무래도 낭만적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영원의 발음을 외웠다 여름 속에서 낭만을 찾다가 새벽을 같이 보낸 적도 있었는데

 

낭만 연습은 쉽지 않아 여름이 오면 보러 갈래? 타오르는 이른 새벽을 보고 싶다거나 잘 익은 방울토마토처럼 터지기 시작한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거나

 

모두 네 낭만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파랑이 우리를 감쌀 수 있었던 건 영원한 마음 때문일까 나는 이렇게 바보 같은 문장들이 전부 헛된 낭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우리는 영원하지 않지만

여름 속 우리의 낭만은 영원한 마음으로

 

미래의 여름을 위해 더 망상하기로 했다 새벽의 낭만은 우리의 계절보다 빨랐어 영원한 곳에서 영원을 빌며 편지를 쓰도록 할게 여름과 여름, 낭만은 그저 낭만일 뿐이고

 

여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연습했어 망상하는 일들이 모두 우리에게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너무 낭만적이지 않니

 

 

 

그리고 위처럼 시집에 수록된 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시가 있어서 공유해요!
2018 제26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중등부 시 부분 동상 수상작이랍니다

 

첫사랑, 여름 (경기 한수중 유지원)

 

후덥지근한 교실의 여름과 절정의 여름, 레몬 향이 넘실거리는 첫사랑의 맛이 나

햇살을 받아 연한 갈색으로 빛나던 네 머리카락. 돌아갈 수는 없어도 펼치면

어제처럼 생생한, 낡은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단편 필름들

열아, 밖에서 차 덜컹거리는 소리 안 들려? 하는 네 물음이 열기에 뭉그러져

이방인의 언어처럼 들리던 때 (아냐, 사실 그거 내 심장 소리야 너를 보면 자꾸 덜컹거려 이제 막 뚜껑을 딴 탄산음료처럼 부글거리고 자꾸 톡톡 터지려고 해)

솔직해지기는 부끄러워 그렇네 간단히 대답하고 말았던 기억 

말미암아 절정의 청춘, 화성에서도 사랑해 는 여전히 사랑해인지 

밤이면 얇은 여름 이불을 뒤집어쓴 채 네 생각을 하다가도 열기에 부드러운 네가 녹아 흐를까 노심초사하며, 화성인들이 사랑을 묻거든 네 이름을 불러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음절마저 황홀한 석 자를 앗아 가면 어쩌지 고민하던 

그러니 따끔한 첫사랑의 유사어는 샛노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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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여름을 떠올리면

사랑이나 청춘과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 같아요

혹은 어딘가 무겁고 후덥지근하게 가라앉는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무더운 여름 좋은 문장들로

잘 이겨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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