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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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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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게
차듸찬 아침이슬
진주가 빛나는 못가
연꽃 하나 다복히 피고
소년아 네가 낳다니
맑은 넋에 깃드려
박꽃처럼 자랐세라
큰 강 목놓아 흘러
여울은 흰 돌쪽마다
소리 석양을 새기고
너는 준마 달리며
죽도 져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거리를 쫓아 단여도
분수있는 풍경 속에
동상답게 서봐도 좋다
서풍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 곳
희고 푸른 지음을 노래하며
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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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수능 기출 문제를 풀면서
이육사 시인의 시를 참 많이 해석했었는데요
그런 해석들에서 벗어나
시를 시 자체로 바라보며 오랜만에 읽으니
오히려 내용이 더 굵고 거칠게 느껴지는 기분이에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소년에게 라는 시를 가장 좋아해요
시의 마지막 연이 너무 좋아서
고등학생 때에도 연신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