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편지 내용 전문 공유

여러분들은 윤희에게 영화 보셨나요?
저는 겨울이 되면 이 영화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겨울에 이 영화를 보기도 했고,

겨울이 배경인 영화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분위기나 영상미도 참 좋지만

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편지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은 윤희와 쥰이 주고 받은

편지 내용의 전문을 공유해봐요!

 

영화 <윤희에게> 편지 내용 전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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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이십 년이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봐.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우리 부모님 기억해? 자주 다투던 두 분은 내가 스무 살 때 결국 이혼하셨어. 엄마는 한국에 남았고, 나는 아빠를 따라서 일본으로 왔어. 일본에 온 뒤로 아빠는 나를 고모한테 보냈어. 가끔 아빠랑은 통화를 하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어. 얼마 전에 돌아가셨거든. 웃기지 않니? 언제 어떻게 돼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아빠 덕분에, 이렇게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다니.

 

우리 고모 알지? 내가 너한테 자주 말하곤 했던 마사코 고모. 나는 고모와 함께 오타루에 살고 있어. 고모는 나랑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과 북적거리는 곳을 싫어하는 것,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을 좋아하는 것까지. 고모는 겨울의 오타루와 어울리는 사람이야. 겨울의 오타루엔 눈과 달, 밤과 고요뿐이거든.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이곳은 너와도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너도 마사코 고모와 나처럼, 분명 이곳을 좋아할 거라고.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는 가끔 네 꿈을 꾸게 되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 하지만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을 너에게 그 편지들을 부칠 순 없었어. 그러다보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쌓이게 되고, 매번 이렇게 처음 쓰는 것처럼 편지를 쓰게 돼.

 

망설이다보니 시간이 흘렀네. 나는 비겁했어. 너한테서 도망쳤고,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거야. 머지 않아 나는 아마 또 처음인 것처럼 이 편지를 다시 쓰게 되겠지? 바보같은 걸까? 나는 아직도 미숙한 사람인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아.

 

윤희야, 너는 나한테 동경의 대상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 가끔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어. 우리가 살았던 동네에도 가보고 싶고, 같이 다녔던 학교에도 가보고 싶어. 한국에 있는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또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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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에게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 거야. 나는 너처럼 글재주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먼저, 멀리서라도 아버님의 명복을 빌게.

 

나는 네 편지가 부담스럽지 않았어.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했어.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 할 거야.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버렸네?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내 말은 진심이었어.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다녀야 했으니까. 결국 나는 오빠가 소개해주는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했어.

 

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 모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 그 사람과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너였어.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곳을 떠난 네가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딸 얘기를 해줄게. 이름은 새봄. 이제 곧 대학생이 돼. 나는 새봄이를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 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야. 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적혀있긴 하지만, 너한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 줄여야겠어. 딸이 집에 올 시간이거든.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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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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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
    재밌게 봤던 영화였어요
    이글을 읽으니 영화 봤던게 떠오르네요
    조용할때 한번 봐야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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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버블
    울컥하네요 편지 내용이..
    저도 이 영화 보고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