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어릴적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고성과 욕설은 기본이고

손톱이 길다는 사소한 이유로도 맞았고, 깍두기를 소리내서 씹었다고 욕을 먹었고

아빠에게 맞은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가는걸 보며 자랐어요

반찬이 맘에 안들면 상을 뒤집어 엎는 일도 많았는데

그 뜨거운 반찬들을 다 뒤집어쓰고도 몸이 굳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기억이 나요

청소년기가 지나고 알콜중독으로 평생을 지내신 아버지가 병약해진 후에야

신체적 폭력에서 해방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앞뒤없는 비난과 의심 욕설 등등 정신적 폭력은 여전했지만요

 

 

서른이 다되어 결혼하면서 독립하였고

얼마안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와 형제 모두가 완전한 해방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버지의 영향은 여전하더라구요

직장 다니던 시절 야근하고 밤 늦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럼 무서워서 몸이 굳더라구요

멀리 앉아있어도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나한테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무서웠어요

실제로 버스에서 갑자기 저에게 마구 욕설을 했던 남자도 있어요

너무너무 무서운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아서

경찰서가 보이는 곳에서 바로 내려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그 남자가 따라 내리진 않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네요

어쩌면 그 일로 트라우마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결혼을 정말 순둥이 남자와 했네요

제 남편은 화는커녕 저에게 불만조차 잘 말하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그래도 결혼 초에는 혹시 몰라 두렵더라구요

남편이 술 먹고 집에 오는 날이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서웠어요

혹시 갑자기 돌변하진 않을까 아빠처럼 굴진 않을까 

남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무서워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남편을 겪으면서 믿음이 생겨서

무서워하거나 하진 않지만요

제 친정엄마도 이부분을 가장 칭찬하세요

정말 착한 사위라구요

 

 

하지만 우리 남편을 믿을 뿐,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신건 아니네요

얼마전에도 가족들과 저녁을먹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번화가를 지나오는데

술취한 남자들이 모여 시끌시끌한걸 보니 또 긴장이 되더라구요

여차하면 나에게 시비를 걸 수 있겠다, 공격받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채로 얼른 빠져나왔어요

이것도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많이 불편한건 사실입니다. 마음이 편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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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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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
    저랑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으시네요.. 저는 아버지가 심각할 정도로 폭력성이 강하진 않았지만 매일 술드시고 오셔서 온동네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엄마랑 매일 싸우고 자는 자식들 다 깨워 무릎 꿇려놓고 몇시간씩 잔소리 하고 하던 트라우마에 결국 결혼 못했어요...
    주변에서 좋은 사람 만나면 된다 많이들 얘기했지만..........극복이 안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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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4
      작성자
      저는 오히려 빨리 가정에서 독립하고 싶었고 그래서 결혼을 서두른 것 같아요
      지금 남편을 만나서 다행이지 만일에 술마시고 주사부리는 남편 만났다면 이혼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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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
    어릴적 안좋은 추억과 기억들이 있군요...
    가족분들 모두다 고통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님!! 이젠 편안하게 남편의 그늘 밑에서 
    살아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걱정말아요~ 님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편분이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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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4
      작성자
      제 나름 그런 아버지 밑에서도 정말 잘 자랐다고 자신했거든요. 바른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사랑 듬뿍 주며 키우고 있구요, 그런데 술취한 남자들 화난 남자들 보면 아직도 저렇게 긴장되는걸 보니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나봐요. 말씀 감사합니다. 남편 믿고 의지하며 잘 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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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3
    폭력가정에서 자라면 위축되고 오랜세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해요..힘든 시간 잘 버티셨어요.. 예전 어른들중엔 가족을 소유물로 여겨서 폭행과 욕설을 퍼붓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좋은 남편분이 계셔서 너무 다행애네요..
    술자리는 종종 사고가 날수 있는거라 피해서 사는게 제일이기도해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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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4
      작성자
      맞아요 술을 마시면 멀쩡하던 사람도 돌변하고 혹은 누구의 잘못도 없이 싸움이 생기기도 하니까 피하는게 상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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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5
    마지막 보니까 남편 좋으신 분 만났네요. 저도 아빠에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공감해요 저도 폭력에 시달려서 이혼한 지금 엄마랑 살고 있어요 좋은남자 만나고 싶어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