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장애] 성공한 덕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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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민상담소의 주제를 보자마자 실소가 터졌다.

주제를 보자마자 떠오른 그 사람.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건가, 감격에 겨웠다가

나의 감격을 와장창 박살내다 못해 시궁창에 쳐박아버린 

그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게(사실 아는 사람도 없긴 하겠지만..) 

살짝 각색하고 최대한 뭉뚱그려서 써내려가 본다.

 

 

*

나는 그 사람의 오랜 팬이였다.

그의 팬이라기보다는 정확히는 그의 창작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걸린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가는 편이였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고 당연히 대화를 나눠본 일도 없다.

그 사람의 말은 대부분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접했다.

메이저한 분야는 아니지만 나름 그 바닥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괜찮은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라 가끔 오프라인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기회가 되면 나도 가끔 참여하곤 했다.

 

 

*

그날은 정말 우연한 일이 벌어진 날이였다.

계획에 없던 그 분이 방문하여 

참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갑작스럽게 마련되었다.

나는 원래 이런 자리에서 주로 듣고만 있는 편인데 

마침 오늘은 꽤 궁금한게 생겼던터라 용기를 내어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은 그 분이 살짝 웃는게 느껴졌다.

소통 자리가 끝나고 나서 모두에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 분이 나를 보고 너무 반갑게 말을 걸었다.

"정말 열심히 봐주신 것 같더라구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차 한잔 대접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차를 마시면서 그간 보았던 창작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폰 번호도 주고 받았다...!!!!!!!!!

선하고 예의바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나쁜 놈일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분을 끌어 내리려고 했지만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나도 성덕이 되는구나!!! 살아있길 잘했어!!!! 하는 생각으로 

이미 잇몸은 만개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였다.

이 날의 기억이 아직도 참 선명하다.

성덕 등극의 날이기도 했지만 

짧은 썸의 기간동안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대화를 한 날이기도 했으니.

 

 

*

연락 초반에는 창작물 이야기가 대부분이였다.

참 이상한 것이 그 때는 이상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친밀감이 쌓이고 사적 대화를 조금씩 하기 시작하면서

대화에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 

학교를 찾는 전재준에게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질문하자

"차 타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글로리에 웃긴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현실에서 모든 대화가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면 절대로 재미있을 수 없을 것이다.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문장, 예를 들어 "언제 밥 한번 먹어요"와 같은 말에

달력을 들고 와서 "언제 만날까"하며 눈을 반짝이는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대체 내 말에 뭐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건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화가 서로 주고 받는 느낌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끌려가는 기분이였다.

A 질문을 해서 A 답변을 하고 있는데

B정도로 주제가 바뀌는게 아니라 한 R정도까지 가는 느낌?

처음엔 음..역시 예술가라 그런가? 생각이 남다르군? 이라고 생각하며 

눈가리고 아웅을 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일수가 늘어갈수록 

대화에서 피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화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쌓이는 느낌이 아니라 

사막에서 무작정 구덩이를 여기저기 파놓기만 하는 느낌에 갑갑하고 짜증이 났다.

 

 

*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맞다.

하지만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 분이랑 연락을 주고 받는 동안에 

내가 계속 가해자가 되는 기분이라 굉장히 괴로웠다.

답답한 대화 방식에 좋게 돌려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처를 받더라.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나 자신도 상처를 받고.

(막판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인터뷰는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하더라.)

제대로 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 그냥 두기로 했다.

부디 이제 더 이상은 다른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지 말고 잘 지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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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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