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조절장애] 상처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몇 년 전의 일이다.

옆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대 초반 어린 친구라 입원했다는 소식에 조금 놀랐지만 
그때는 나와 친하지 않은 사이라 어디가 아픈지 묻기도 조심스러웠다.

이틀인가 삼일 뒤에 출근한 그 친구의 얼굴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밝고 애교있는 모습이였다.

복도에서 마주쳤길래 안부차 몸은 괜찮내고 인사를 건냈는데

씩씩하게 "네, 지금은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얼굴은 

입원할 정도로 아팠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

몇 주가 지난 뒤 그 친구가 병원에 다녀오느라 출근이 늦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또, 

그 몇 주 뒤에 또....

아주 짧은 간격은 아니였지만 서너 달에 한 번 정도는 

병원에 다녀오느라 출근이 늦어지거나 아예 연차를 내기도 했다.

20대 초반 어린 친구가 어디가 이렇게 자주 아픈건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 친구와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게 되었다.

 

안색을 살피다보니 몇 가지 특이해보이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키도 크고 날씬한데 더운 여름에도 항상 긴 팔, 긴 바지만 입었다.

[실내가 추워서 그럴수도, 햇빛에 살이 타는게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은 항상 양 손목과 발목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는 점.

[손목이랑 발목이 약한가보지]라고 생각했지만

묵직한 서류더미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와 가까워질 계기가 몇 번 있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완전 인싸 재질에 EEEE형의 인간이였고 

나는 다가오는 사람을 딱히 거부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우리는 몇 번의 사건을 겪으면서 꽤나 친해졌다.

무엇도 그 친구는 애교가 굉장히 많았고 나를 잘 따랐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나를 언니라도 불렀다.

퇴근하면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한잔씩 했다.

그러더 어느 날이였다.

 

"언니는 나한테 왜 손목 보호대 차고 다니내고 안 물어봐?"

"너 그거 문신해서 그런거 아니야? 어른들한테 잔소리 들을까봐 가리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깔깔거리면서 그 친구가 웃었다.

 

"언니한테만 보여줄께"

내 앞에 불쑥 내민 그 친구의 손목은 여기저기 긁히고 베인 상처로 엉망이였다.

 

"언니, 나 자해를 해"

 

 

*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자신을 키우는 것을 버거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그 때 어떤 기분이였는지 잘 생각나지도 않고 

딱히 되게 불행한 것도 아니였는데, 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처음 자해를 했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고 한다.

친구와 싸운 날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방에서 펑펑 울다가 갑자기 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칼로 그으면 아프겠지? 하는 생각으로 

커터칼을 살에 대보았다가 때었다가 반복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커터칼로 손목을 확 그어버렸다고 한다.

피가 줄줄 흐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가 덜컥 겁이 나더란다.

엄마에게 칼을 떨어뜨려서 다쳤다고 말하고 근처 병원에서 봉합을 했다고 한다.

 

사실 엄마는 이 상처가 

떨어뜨린 칼에 베인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말에 짜증을 내고 날을 세우던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기 시작했으니까.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교복과 가방을 엄청나게 찢어대는 바람에

교복값으로만 수백이 나갔을텐데, 단 한번도 엄마는 자신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마 내가 죽어버릴까봐 그랬겠지"

 

첫 자해 이후로도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참을 수 없이 피가 보고 싶어져서 피부를 그어버리거나

온몸을 긁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피가 날 때까지 몸을 긁기도 하고

머리를 다 쥐어 뜯은 적도 있다고 한다.

내 몸에 어떤 날카로운 통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신을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참으려고 노력하는데 애를 쓸수록 참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살을 베고 물어뜯는 동안에는 아픈 줄도 몰랐고

오히려 터지는 피를 보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고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조심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자해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번이나 병원에 다닌 것이라고.

 

*

이런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눈 것 치고 이후로 우리는 꽤나 잘 지냈다.

여전히 농담을 하고 가벼운 수다도 떨고 직장 상사의 욕도 했다.

그렇게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또 같은 사건이 생겼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 이제 정말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자신은 죽고 싶지 않은데 

자기가 자신을 죽여버릴 것 같다며 입원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당분간은 일도 쉬고 엄마와 가족 상담도 받으면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아주 잘 지낸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예전만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여전히 EEEE의 기질을 뽐내며 누구보다 밝게 지내는 중이다.

정신과 치료와 함께 흉터 치료도 받아서 이제는 보기 싫은 흉터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 친구가 잘 지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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