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우니까 요즘은 자꾸 서점으로 발길이 가더라구요
매대를 살펴보다가 제 눈에 쏙 들어온 책이 있었는데,
바로 임선우 작가의 <초록은 어디에나> 라는 책이었어요!
임선우 <초록은 어디에나> 줄거리
총 3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인데요
묘하게 각 단편이 이어지더라구요
내용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데, 이어지는 지점들이 있어서
재밌기도 하고 단편집을 이렇게 연결짓는게 큰 매력이구나를 느꼈어요
출판사 서평에 나와있는 내용으로 줄거리를 대신해볼게요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은 두드림과 응답으로 서로의 넘나듦이 이루어지는 소설이다. 만남과 교감이란 보편적 키워드가 떠오르겠지만 이것이 범상하게 펼쳐질 리 없다. 작가는 아파트 누수로 인해 윗집 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앞에 거대한 낙타를 등장시킨다. 말도 하고 곤란해도 하고 협상도 하는 낙타를. 조금은 당황했지만 누수공사를 위해 자연스럽게 낙타를 집에 들이는 여자처럼, 독자는 어느새 단봉낙타 한 마리를 마음속 ‘그럴 수도 있지’ 방에 슬며시 들이게 된다.
「사려 깊은 밤, 푸른 돌」에는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돌을 토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점액질로 둘러싸인 동그랗고 푸른 돌멩이엔 불안과 아픔이 응축돼 있고, 그것은 전염성을 지녀 주위의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슬픔을 토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돌멩이를 병에 넣어 밀봉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복수를 위해 전해진 돌이 예상치 못한 관계의 점액질이 된다.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는 무려 금괴를 밀수하는 담합에서 시작한다. 썩 은밀하지도 그리 음험하지도 않다. 싱겁게 성공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이상한 불법행위가 순식간에 우리를 오사카 한복판으로 이끈다. 사실 두 여자는 밀수만을 위해 일본으로 온 건 아니었다. 각자 찾고 싶은 게 있었다. 물론 찾지 못한 채, 찾을 수 없음을 확인한 채 발길을 돌리지만 그들에겐 서로가 있다. (...) 둘은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상처와 단념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올 뻔하지만 공항에서 짧은 기적이 펼쳐지며 이들의 새로운 게이트를 암시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어쩐지 행복한 엔딩임을 믿게 한다.
<초록은 어디에나> 좋아하는 문장
그런데 몇 킬로미터 내에도 물이 없을 때, 물의 그림자조차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을 때 낙타가 무엇을 하는지 아세요? 유미 씨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똑같이 걷는 겁니다. 한 걸음 씩.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유미 씨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사막을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상상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 양을 셀 때와는 달리 잠이 왔어요.
- 초록 고래가 있는 방
희조의 손길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희조의 손이 등을 쓸어내릴수록 추위가 가시면서, 구역질이 나오는 대신 숨이 쉬어졌기 때문에. 숨을 들이쉴수록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속이 조금씩 편안해졌고, 몸은 정상 체온으로 돌아오다 못해 뜨거워지고 있었다. 새파랗고 단단한 돌, 그 돌이 지금 녹고 있어. 그렇게 확인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푸른 돌이 녹는 순간 같이 녹아내리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와 영하의 보조개, 추위로 얼룩진 이파리들과 소파 위 불면의 밤들. 잠시 뒤에 희조는 나를 바라보며 말해주었다. 내가 울고 있다고.
- 사려 깊은 밤, 푸른 돌
우리는 사마귀 무덤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작고 평평한 무덤 앞에서 영하 언니는 나에게 좋은 것들은 왜 금방 끝나버리는 걸까, 하고 물었다. 언니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언니가 나에게 너무나 좋은 것이어서, 그래서 금방 끝나버렸다는 말을 끝까지 전하지 못했다.
-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개인적인 리뷰
왜 이 책을 보며 여름이 생각났을까요? 초록이라는 색깔 때문일 것 같기도 했어요
신기한 건, 생각보다 초록이 책 속에 엄청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건데요
오히려 파란색, 하늘색의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세 개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첫 번째 단편인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을 고를 것 같아요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상처를 드러내고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는 서사를 참 좋아하거든요!
앞서 좋아하는 문장으로 꼽기도 했지만,
저는 물 냄새를 기민하게 맡을 수 있는 낙타가
그럼에도 물이 느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참 좋았어요
이 책을 통 틀어서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요!
그럼, 계속해서 한 걸음씩 걷는 거예요
느껴질 때까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그 단순한 방법이 모든 것의 해결책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내 눈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막막할 때
당장이라도 무기력함과 우울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을 때
무언가를 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
그럴 때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걸음만 더 옮겨보는 것
계속해서 걸어보는 것, 이라는 당연한 그 얘기가 참 좋았어요
모난 내용이 참 적은 단편집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고 구매해서 나왔는데요
부담없이 짧게 읽고 싶은 책을 찾는다,
아니면 대중교통에서 들고다니며 읽을 책이 필요하다 하시는 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이랍니다!
꼭 이 계절에 읽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