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살게 되면서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은 해외에서 사업을 하던 아빠와 떨어져서 꽤 오랜 시간을 따로 살았습니다. 1년에 3~4번 정도 한국에 들어와서 짧으면 일주일 길면 열흘 정도를 머물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곤 하셨는데, 아빠가 사업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서 가족이 모두 다 같이 모여 산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살면 행복할 것 같고, 아빠를 많이 그리워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전혀 아닙니다...

 

아빠는 술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을 마시면 주정이 심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이미 아빠는 술주정과 폭력성으로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어요. 어렸던 저와 오빠는 아빠가 술을 마시는 시간이 되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죠.

그랬던 아빠가 해외로 나가 일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불안이 조금씩 사라지고 한결 밝게 지낼 수 있게 됐었습니다. 물론 잠시 한국에 들어오실 때마다 여전히 술을 많이 드시고 주정과 폭력성은 계속됐기에 일 년에 몇 번, 며칠은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았었어요.

 

이제는 저와 오빠는 성인이 되었고, 아빠는 연세를 드셔서인지... 힘으로 오빠를 이길 수 없어서인지 주정은 여전하지만 폭력적인 면은 예전보다 덜 하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번씩 심할 때가 있어 경찰이 오간 적도 있었어요...

지금 현재 오빠는 직장 때문에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서 살고, 집에는 저와 엄마 아빠 이렇게 셋이 거주 중입니다. 그런데 오빠가 없어서인지 요즘따라 좀 주정이 다시 과해지는 모습을 보이시네요...

 

문제는 아빠의 그런 면면들 때문에 단순히 무섭다, 힘들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빠는 야간에 하는 일을 하고 계셔서, 일을 끝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 아침 5시 전후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술을 아침에 퇴근하고 드시죠...

그러면 저는 새벽 4시쯤부터 자동으로 잠이 깹니다. 조용한 새벽,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 엘리베이터의 띵똥 하는 도착음, 현관문 도어록을 여는 소리...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두근거려 도저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혹여 아빠가 술을 드시고 또 행패를 부리지는 않을까, 엄마와 싸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로 아빠가 잠에 드실 때까지 저 역시 다시 잠에 들지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낮에는 정신이 멍하고 몹시 피로감이 느껴져요. 한번은 겨우 다시 잠에 들었는데, 제 몸 위에서 어떤 형체가 저를 짓누르는 가위에 눌려서 숨이 안 쉬어져 괴로워하며 깬 적도 있었네요.

 

밖에서 약속이나 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도, 아빠가 쉬시는 날이라 종일 집에 계시는 날이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이고 불안해서 엄마에게 끊임없이 전화와 문자로 물어보며 상황을 살피다가 아빠가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고는 합니다.

 

매일같이 어떤 큰일이 터지거나, 아빠의 폭력성이 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저는 어릴 때의 경험과 기억으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저도 따로 나가서 살라고 권하시지만, 따로 나가서 살면 정말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가 대처를 할 수 없다는 불안과, 어차피 나가서 살아도 늘 엄마에게 안부를 묻고 집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자식들이 있으면 좀 덜한 면이 있기에 그냥 이대로 계속 쭉 지내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이런 가정사와 제 모습을 티 내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척하려고 애쓰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다 지치고 힘드네요... 딱히 다른 단어로 표현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제 보니 이게 일종의 신경쇠약인가 봅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된 상황에 적응을 하고, 적절한 대처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가족을 지금보다 더 믿는다면 이 불안함을 떨쳐내고 온전히 저 자신의 생활에 집중해서 밝은 척이 아닌 진정으로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지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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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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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
    제 주변에도 그런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이 있어서 자주 얘기를 들어 어떤 상황과 심정일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생겨난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무너지게 두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까지 미리 앞서서 걱정하다 보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을거에요.
    어머니의 말씀처럼 독립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함께 살아도 함께 살지 않아도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불안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서 생활하며 대처를 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와 하나의 방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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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
      작성자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겠지... 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은 늘 머릿속 한편에 하고는 있었습니다. 독립해서 본인의 일과 인생에 집중해서 사는 오빠가 부럽기도 하구요.
      말씀처럼 제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들에 대해서 너무 지나친 걱정으로 저 스스로를 옭아매고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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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3
    만약의 상황에 혼자 계실 어머니가 걱정되어 독립을 하고 싶어도 여러가지 불안 요소들이 존재하기에 망설이실 수 밖에 없는 입장 너무 이해가 되고 백번 공감합니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와 충분한 대화로 해결 방안을 찾으시길 바랄게요. 긴 글에 많이 힘드셨음이 느껴져요. 마음 고생 많으셨던만큼 앞으로는 차차 진정한 편안함이 오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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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
      작성자
      이해하고 공감해주시는 댓글에 조금 긴장감이 사그러들고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너무 무섭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재라고만 여겨져서 대화를 시도해 볼 엄두조차도 못 내봤던 것 같습니다. 써주신 댓글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고 충분히 제 생각과 심경을 전달 할 수 있는 성인이네요. 진정한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 이젠 저도 무언가를 시도할 때인 것 같습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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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만두
    직업상담사2급
    익명님의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잘 전해집니다
    엘리베이터 소리, 현관문 도어락 소리..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선뜻 독립하지 못하시는 것도 다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지 않으셨을 때에도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성격이신가요?
    가족끼리 깊이 대화를 해보셨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힘드시겠지요
    익명님이 얼마나 힘드신지 오빠와는 이야기를 나눠보셨을까요?
    그래도 일단 독립하시는 게 최우선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너무 멀리 떨어지시는 게 불안하시다면 본가 근처에서 자취하시면서
    상황지켜보시다가 어머니도 힘드신 것 같으면 그때 어머니를 모셔오는 건 어떨까요
    일단은 익명님이 잠을 편히 못 주무시는 게 걱정이 됩니다
    혼자 따로 나와 살면서 잠이라도 편히 주무시면 한결 맑은 정신으로
    좀더 긍정적인 방향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익명님이 건강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