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가 의심되는 직장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회사에는 산만과 충동성의 끝을 달리는 엄청난 직장 상사분이 계십니다.

나이도 적지 않으세요. 결혼한 자녀분도 있으신 분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정말 이런 분을 처음 봤어요.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어느 날 제 자리 전화가 울려서 받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전화가 끊깁니다.

그리고 연달아서 제 핸드폰이 울려서

받으려고 하면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사내 메신저가 울립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오세요....

보통 이런 일은 15초 내외로 상황이 종료됩니다.

 

이건 다른 분이 겪으신 실화인데요,

그날 사무실 전 팀원들이 모두 외부 일을 보러 나가느라

딱 한 분만 사무실에 남아 계신 상황이였어요.

본인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뒷 자리 직원 전화가 울리더래요.

땡겨 받기 하려고 손을 뻗는데 전화가 끊기더랍니다.

그리고 그 옆자리 직원 전화가 울리고 또 끊기고, 그 옆옆자리 전화가 울리고 끊기고....

그 분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전화가 -따르릉-하고 울리는 것도 아니야, -ㄸㅏ-하고 끊기더라니까?"

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분이 혼자 방을 쓰시거든요. 

지금은 회사가 이사를 해서 좀 나은 편인데 이전 사무실은 정말 엄청났어요.

방문을 여는게 무서울 정도였어요.

폐기하고도 남았어야 할 각종 서류 더미들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거든요.

그 분이 회장님도 아닌데 아무리 독방이라 해도 방이 넓어봐야 얼마나 넓겠어요.

지금은 모두 전산화 되어서 종이 서류가 나올 일이 많지 않은데

몇 십년된 서류까지 모두 이고지고 지내시더라구요. 

얼마나 엄청났냐면, 서류를 둘 곳이 없다고 본인 책상 아래 쌓아두시는 바람에 

책상 의자를 앞뒤로 뺄 수만 있지 

옆으로 움직이거나 다리를 움직이는건 아예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대화도... 거의 안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뭔 말을 하기 전에 이미 하실 말씀을 혼자 쏟아내시고는 휑하니 가버리시거든요.

그리고 문장에 주어나 목적어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끼리 각자 들은 내용을 조합해서 추론을 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일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어요. 

대체로 문제가 엄청나게 많지만 

이 분이 회사에서 계속 살아남아서 관리직까지 올라가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 기간 곁에서 이 분을 보면서 ADHD의 장점도 알게 되었는데요.

 

일단 창의성이 대단하세요.

저는 좀 경직되어 있는 성향이라 발산적인 사고가 잘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말씀하시는 아이디어를 들으면 말씀하시는게 산만하고 전달이 잘 되지 않는게 문제일 뿐

핵심을 잘 정리해보면 통통튀는 아이디어가 참 많으시더라구요.

그리고 또 한가지 부러운 점은

저는 J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면 쉽게 당황하는 편이예요.

그런데 이 분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쉽게 풀어내시더라구요.

이런 부분은 참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나

비록 나쁜 의도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하시는 점은 

그 분과 계속 같이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곤욕스러워요.

그리고 저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그 분이랑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대화의 절반 정도는 놓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대화를 할 때 녹음기를 켜서 들어간 적도 있네요.

 

연세도 있으셔서 제가 이 분을 변화시킨다는건 꿈도 못 꿀 일이고요.

무조건 제가 적응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꽤 많이 적응했구요.

하지만 여전히 쏟아지는 말폭탄 때문에 

그 분께 전화오는 것이 너무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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