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힘은 무서운 것이었다.

50대 중반까지 탈모에 대해 어떤 걱정도 없었던 나였다. 물론 할아버지께서 일부 탈모였던 게 걸리긴 했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머리 감기도 귀찮을 정도였기에 친구들이 하나둘 "탈모인의 길"로 가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전은 무서운 것이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가고 있는데 "와~ 팀장님 머리 많이 빠지셨네요. 머리가 훤해요." 하며 키가 아주 컸던 사무실 직원이 나를 내려보며 말하는 것이다. 

그날 사무실에서 거울로 확인한 사실은 듬성듬성 나무 몇 그루만 심겨있는 휑한 벌판과 같은 느낌의 정수리였다. 평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수리가 보이지 않아 탈모를 알 수 없어 신경 쓰지 않았으나 현실은 내 눈을 피해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탈모는 콤플렉스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게 닥치고 보니 콤플렉스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머리 쪽에 신경이 쓰이고 누구를 만날 때면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모자를 사용하고 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시원하게 박박 문지르지 못하고, 살살 비비다마는 형국이라 개운한 느낌이 없다.

 

지금은 처음의 충격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설 때 머리에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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