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증 - 거미

https://trost.moneple.com/depression/29721216

어릴때부터 거미가 너무 무서웠어요.

쥐나 바퀴벌레처럼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자기가 쳐놓은 거미줄 안에서만 맴맴 돌고

기껏해야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는게 다인

거미가 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눈이 8개라는것도 너무 무섭습니다.

제 눈에 그 8개의 눈동자가 보일 리 만무하지만

거미를 보게 되면 8개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 소름이 끼칩니다.

나를 사형시킨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더 잔혹하고 끔찍하게 죽일수 있을까.

나를 방에 가둬놓고 거미 수십마리를 풀어놓는다면 

전 다음 날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닐겁니다. 

그 방법이 가장 잔인하게 나를 죽이는 방법임을 절대 제 원수에게 알리지 않을겁니다. 

또한 거미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절대 보지 않습니다.

홍보영상만 봐도 바로 TV를 꺼버립니다.

 

십여년전 잠시 도시가스 검침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군데 얽매이지않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점검을 해주는 주부사원들을 보며

저도 잘 할 수 있을것 같았죠.

수도 검침원 자리가 나서 하려했더니 

아는 분이 그 직업은 벌레와 너무 밀접한 직업이라며 극구 말리셨죠.

땅에 덮인 계량기를 보려고 뚜껑을 여는 순간

오만 벌레와 쥐들이 기어 나온다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도시가스 검침원은 계량기도 벽에 달려있고

벌레와는 그닥 관련이 없을것 같았어요.

저희집에 오시는 검침원을 봐도 가스렌지쪽과 보일러 가스누출만 체크하실뿐

벌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업무같았죠.

그렇게 도전한 도시가스 검침원.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첫투입된 첫 집.

그집은 돼지갈비집이었습니다.

배운데로 주방에 들어가 배관이나 기구에서 가스가 새진 않는지 검사하고

보일러 위치를 물었죠.

그랬더니 건물 뒤로 들어가면 베란다가 있고 제일 안쪽으로 보일러가 있다는거에요.

자신있게 찾아간 뒷편 베란다 앞에서 전 그대로 굳어 버렸습니다.

그 베란다는 몇년째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었던 것처럼

지면보다 낮은 베란다통로가 온통 거미줄밭이었습니다.

그 바닥이 안보이는 뿌연 거미줄밭을 5-6미터 지나야 보일러가 있었어요.

거길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어요.

마냥 서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는데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오시더니

"거미줄이 많죠? 점검올때 외엔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서~~"

하시며 변기 닦는 솔을 건네 주셨습니다.

노하우도 없고 유도리도 없는 신입 초짜라 당장 그 일을 때려치우던지

아니면 그 거미줄투성이의 통로를 지나갈수밖에 없었죠.

눈 딱 감고 울먹거리며 변기솔을 위아래~위아래~ 흔들며 조심조심 걸어갔고

어두컴컴한 구석에 설치된 보일러쪽 누기와 연통 검사를 하고 

정말 무슨 정신에 빠져나왔는지 모르게 그 베란다를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저와 거미의 동행은 시작되었습니다.

계량기들이 설치된 건물 뒤편이나 구석은 온통 거미줄 투성이었습니다.

보일러실엔 천장에 거미가 저를 내려다 보고 있고

귀뚜라미와 곱등이가 벽에 잔뜩 붙어서 

언제라도 제게 점프를 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죠.

날씨가 더워질 무렵 검침을 하러 가면 자그마한 거미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그 거미와 눈싸움을 벌입니다.

갈때마다 커져있는 모습. 길어진 다리마디들.

여름이 무르익는 9월이 가장 피크입니다.

다리 마디마다 색깔이 노랗고 거멓게 변한 커다란 거미는 저에게 또 왔냐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먹을것들을 거미줄로 동동 동여매서 자기집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서 말이죠.

눈한번을 깜빡이지 못하고 거미와 눈싸움을 하며 그 거미집을 겨우겨우 비껴서 검침을 하고 나오면 

머리카락이 솟구치며 온몸이 다 가렵습니다.

등에 거미들이 달라붙어 있는것 같아 깨끗한 담벼락에 등을 막 문대기도 하죠.

어쩔땐 지나갈 공간이 안나와 긴 막대기를 가지고 거미줄의 끝부분을 벽에서 떼내어 바닥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서운 속도로 숨어들어가는 거미로 인해 덩치큰 제가 더 혼비백산하죠.

하지만 거미보다 더 무서운건 밥줄입니다.

거미가 무서워서 밥줄을 놓칠 순 없잖아요.

그렇게 나의 천적 거미와 동거동락했던 8년여를 끝으로 전 이직을 했습니다.

거미에게 지지 않았슴에 너무 보람되고 제 자신이 기특했던 기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거미가 무섭지 않냐구요?

절대요. 아직도 실거미만 봐도 그방에 한달은 넘게 출입하지않습니다.

거미는 작든 크든 저를 공포에 떨게 하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거미는 익충이죠.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곤충이죠.

공포스럽고 무서워하긴 하지만 미워하진 않습니다.

제자리에서 집만 지키고 있는 거미를 좀 더 나이가 들면 안무서워하게 될까요?

거미가 집만 지키지 않고 비둘기처럼 날아다니고, 쥐처럼 뛰어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전 아마 집에서 한발자국도 걸음을 못떼고 처박혀살다 죽을겁니다.

그래서 거미에 공포를 느끼게 해주어서 신에게 감사합니다.

조류공포증이나 쥐공포증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길을 가는데 거미가 날아다니고 뛰어다닌다면...... 생각만해도 소름이 쫙 끼칩니다.

거미야 고맙다. 집을 잘 지켜주어서. 

그리고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합니다.

외국 아프리카쪽 거미들은 땅이나 나무에 숨어서 먹이를 잡아먹고 살기에 굳이 거미줄이 필요없잖아요.

대한민국 만세!!!!

마지막으로 거미가 너무 무서운 엄마를 위해 학교가던길에 건물뒷편 계량기를 봐주겠다며

씩씩하게 건물뒤편 구석진 통로를 걸어가다 투명한 거미줄을 그대로 얼굴로 받아버린 아들.

아침댓바람부터 그녀석의 크나큰 비명소리를 듣고 큰 난리난 줄 알고 놀라서 뛰쳐나온 

그 빌라 주민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거미비스꾸리한 것만 보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아들.  

미안하다.  엄마의 죄가 크다. 

하지만 괜찮아.

나중에 벌레 잘 잡는 마누라 얻으면 된다.

 

 

0
0
신고하기

작성자 익명

신고글 공포증 - 거미

사유 선택
  • 욕설/비하 발언
  • 음란성
  • 홍보성 콘텐츠 및 도배글
  • 개인정보 노출
  • 특정인 비방
  • 기타

허위 신고의 경우 서비스 이용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