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증? 뭔가 나와는 상관없는듯한 주제였는데
들여다보니.. 토닥토닥할 마음이 제법 큰 덩어리로 보여 놀랐습니다.
첫번째, 아직 겪고 있는 '좁은 방' 공포증
아마 폐쇄공포증의 종류이겠지요.
고3때, 부모님의 불화로 집에서 살기 어려워
역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 나와 살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여기가 집보다 공부하기 좋고 안전할 거라 말씀하셨고
저도 어떻게든 공부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던터라
고시원이니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가 갔던 역 근처의 고시원은
주변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언니들의 숙소이자 제2의 일터였어요.
아직 어린 저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 너무 많았습니다.
밤마다 누가 내 방에 들어올까봐
작은 소리만 나도 고장난 문고리를 부여잡았고
불투명 유리이나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공동샤워실과 화장실에서는
거의 바닥에 최대한 붙어 웅크려서 씻고 움직이느라 부딪치고 미끄러지기 일쑤였어요.
침대 다리부분으로는 책상이,
머리부분 위에는 옷 선반이 겹쳐있을만큼
아주 좁은 방이었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방에 누워있으면
방의 사방 모서리와 벽이 움직여서 저를 조여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어요.
눈을 뜨고 누워있지 못할만큼.. 점점 그 공포가 커졌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었고 제 심약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몇개월을 책상에 엎드려 새우잠을 자고
새벽 6시에 학교 수위아저씨와 함께 교문을 열었지요.
20여년이 지난 지금,
지나간 옛일로 어렴풋하게 여기면서도
가끔 그와같은 작은 방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의 공포가 그대로 재생되는걸 느낍니다.
단기간 묵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가구를 줄여서라도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완전히 곯아떨어질만큼 피곤하기 전까지는 눕지 않으려 하거나
최대한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게 되더라구요.
방탈출 같은 게임은
좁은 공간이 아닌데도
'방'에 대한 의미 때문인지
게임의 긴장감 이상으로 계속 목이 조이는듯한 불안감이 있어서 한번 해보고는 다신 안 가게 되었어요.
이제 제 삶의 공간은 더이상 이 공포를 유발하진 않지만
내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조금은 일그러지고 펴지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걸
가끔 의식하게 됩니다.
잘 견뎠어... 고생했어... 그렇게 저를 다독이려 해요.
두번째로는... 사회공포증의 경미한 증상이 있어요.
어릴 때 오빠들의 짖궂은 장난에 당황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곤 했는데
그것을 두고 더 심하게 놀림을 받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내가 무척 쓸모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것이 제게 끔찍한 경험, 공포가 되었어요.
어른들은 애들 장난, 남자아이들의 짖궂음 정도로 생각하셨겠지만
제게 오빠들은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주 강자들이었고
동등하게 장난치며 노는 관계가 아니었어요.
더군다나 내 두려움이 그들의 놀림거리가 된다는 것은
존재적으로 큰 비참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비난받거나
놀림, 비하의 경험에 내가 다시 노출되지 않도록
무척 애를 쓰며 살았던 것 같아요.
나는 그런 사람, 그런 대우를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여느 사람들처럼 잘난 사람으로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난받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일을 더 찾아 하며 내가 쓸모있고 가치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애를 썼죠.
지금도 꼭 놀림을 받아서가 아니라
당황하거나 수줍어서, 혹은 좋은 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얼굴이 붉어지는 상태가 되면
마음이 조급하고 얼른 그 상황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괜찮아~ 이 상황을 즐겨도 돼.. 좋은 일이야..
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이제는 공포의 수준이 되지 않도록
제 안에서 왜곡을 바로잡으려 노력합니다.
정리하다보니
공포감은 심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조가 되었다면, 적절한 도움이 있었다면 '공포증'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지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것..
이걸 잘 해주고 싶습니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