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제목의 동화가 있다.
소년 마르슬랭 까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때나 재채기를 하는 소년 르네 라토가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둘은 서로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와 재채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두 단짝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르네가 이사를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는 어른으로 성장한 마르슬랭은
여전히 재채기를 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르네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 사이로 남게 된다는 짤막한 이야기이다.
이 동화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얼굴 빨개지는 것이
조금은 귀엽고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아무 때나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은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적면공포증]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사회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다.
적면공포증이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얼굴이 빨개진 것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심까지 느끼게 되는 증상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에서는 얼굴이 전혀 빨개지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대면을 할 때,
발표같은 것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느끼게 될 때,
그리고 꼭 부정적이거나 긴장하는 상태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들뜨거나 흥분하여 심장박동이 빨라지면
어김없이 나의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 버린다.
이게 어느 정도로 심한가 하면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들과 웃으면서 아침 인사를 할 때
매일 듣는 말이 "오늘도 나 만난게 그렇게 반가워?"일 정도이다.
인사를 하면서 조금 웃었다고 얼굴이 새빨개져버리니까.
처음에는 내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너무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아서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한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동료들은 내가 반가움에 심박수가 올라가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웃으면서 농담을 나눌 정도로 편안해졌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있을 때 얼굴이 빨개지면 정말 진땀이 난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얼굴이 빨개진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참 좋을텐데,
관자놀이부터 눈두덩이, 이마까지 뜨끈하게 열이 오르고
약간 식은땀까지 나니 도무지 스스로가 모를 수가 없다.
지금은 나도 제법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두려운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지만
나는 이런 적면공포증 때문에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남들 앞에서 게다리춤도 잘 추고
동네가 떠나가게 까불까불하던 장난꾸러기였는데
사람들에게 자꾸만 "어머, 넌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되자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안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심장이 두근거리면 어김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그럼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며 "얼굴 빨개졌다."라고 말을 하면
더 당황하여 더더욱 얼굴이 빨개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누군가가 나를 주목하는 것이 정말 공포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과거의 일을 회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학창 시절 내내 팀 프로젝트로 발표할 일이 생기면
나는 늘 자료 수집이나 PPT를 만드는 일을 하였고
원래는 아나운서나 기자가 나의 장래희망이였는데
실력이 모자랐던게 90%의 이유이고
적면공포증이 나머지 10%의 이유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남들에게 이런 고민을 이해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얼굴 빨개지는게 뭐가 어때서?"라는 말도 많이 들어보았다.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해주는 친구들도 많지만
사실 나는 아직 완전하게 괜찮지가 않다.
나에게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땀을 빼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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