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선생 공포증

대학생때까지 저는 바퀴벌레가 어떻게 생긴지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본적도 없었고 그러기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자취를 하면서 처음으로 바퀴벌레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대학가 작은 원룸이었는데 분리형 주방에 깔끔하고 교통이 좋고 가격도 좋아 서둘러 계약해서 들어간 첫 홀로 살게된 자취집. 늦은 가을에 들어가 잘몰랐는데 이듬해 초여름부터 갑자기 빨갛고 길쭉한 그것들이 주방에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두마리 보이더니 얼마후에는 수마리가 사람에 있어도 뻔뻔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게 바퀴벌레란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구르기만 하다가 그걸 치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암담해졌습니다. 컴배트도 사고 발라놓으면 금방 효과가 있다는 짜는 약을 사다가 여기저기 뿌려두었습니다. 그러다 안 사실인데 주방 싱크대 틈새에 전 세입자가 붙여둔 바퀴벌레 트랩들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원래부터 바퀴벌레 소굴이었던 것입니다. 웃긴건 그 빨간 바퀴벌레는 주방과 욕실에만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방에는 까만 다른 종의 바퀴벌레가 살았습니다. 빨간걸 보다보니 까만 애들은 괜찮아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바퀴벌레는 끝도없이 나왔고 아무리 봐도 도저히 적응이 안되어 볼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결국 계약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바깥에서 아주 가끔 택배로 딸려오는 바퀴벌레 말고는 정기 소독으로 상주하는 바퀴벌레가 없었습니다. 그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뭔가 바닥에 작고 동그란 것이 떨어져있으면 바퀴벌레인줄 알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기분이 안좋거나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때면 꿈에서도 어김없이 바퀴벌레들이 나의 골칫거리를 대변하는듯 등장합니다. 수백마리가 내 주변을 활보하는 꿈부터 냉장고를 열었더니 대왕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꿈까지 다양합니다. 악! 하며 꿈에서 깨어날때마다 꿈이라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바퀴벌레. 귀신도 무서워하지만 저는 바퀴벌레가 정말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