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태우고 재가 되어 버린 나_번아웃증후군

출근이야 언제나 하기 싫은 것이지만

요즘 들어서 나는 극심한 출근하기시러병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에는 퇴근할 때 쯤이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기 전까지는 좋은 기분을 유지했는데

요즘은 퇴근을 해도 전혀 기분이 좋지 않다.

내일이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이고

잠이 드는 순간에도 내일 또 일어날 생각에 우울해진다.

일요일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벌써 월요일을 걱정한다.

 

*

내가 마지막으로 쉬었던건 작년 추석이였다.

이후로 평일 근무는 당연한 것이고 

철야와 주말 근무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작년 연말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이다.

작년 10월 말쯤 대략적인 스케줄을 꼽아보니

아마도 2월이나 3월까지, 

운이 나쁘면 4월까지도 쉬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주말도 있고 중간 중간 공휴일도 있으니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지쳐있었다.

 

우리 회사는 일이 많다.

바쁜 시즌이라는 개념도 없이 1년 365일이 전쟁이다.

바쁜 와중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웃을 일도 생기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다.

업무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한,

내 마음 상태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나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요즘은 일을 하다보면 전신의 관절이 부서지는 것 같고 

어깨에 태산이 얹어져 있는 듯이 무겁다.

퇴근하고 나면 증상이 훨씬 나아지는걸 보면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임이 분명하다.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업무가 쌓이는 속도는

내가 내 마음 상태나 몸의 상태를 알아채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기분 전환을 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지만

업무가 끝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는다.

퇴근하고 나면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잠이 드는 날들의 연속이다.

 

*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속으로만 삭히고 묻어버리기를 반복하다보니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순간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와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클라이언트를 앞에 두고 

책상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매 순간 느끼는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일의 속도를 저해하는 큰 문제점 중에 하나는

타이핑을 할 때 오타를 엄청나게 낸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

손가락에 눈이 달린 듯 실수없이 써내려가던 너무나도 쉬운 작업인데

한 글자를 쓸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30분이면 할 일을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이런 실수 때문에 몇 분 씩을 더 할애하다보니

평소보다 시간을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자꾸만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성격 때문에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쉽지 않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업무 특성상, 한 자리에 있지 않은 경우도 많고

독립된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몇 달 전부터는 아예 사람들이 며칠동안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사내메신저에 접속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출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동료의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냥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 싫어졌다.

나는 지금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사람들 앞에서 웃는게 힘들었고

나 조차도 똑바로 보기 힘든 나의 못생긴 마음을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알아채버릴 것 같았다.

 

*

나는 내 일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이 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나의 일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확실히 나는 지금 아주 많이 지쳐있다. 

끝맺음으로 내가 어떻게 해서 어떻게 극복해보겠다는 말을 쓰고 싶지만

아직 나는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한채 

그저 한줌의 재로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