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생 때 예체능을 했어요.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유학은 커녕 아예 이 길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레슨을 그만두던 날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레슨실로 엄마가 찾아와서 한참동안 선생님이랑 상담을 하고 난 뒤
짐을 다 챙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날이 저의 마지막 레슨이였네요.
엄마가 차 안에서 더 이상 레슨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때 완전 어린 나이는 아니였기 때문에
어쩌면 이 길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어요.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늦게 시작한 편이라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잡는 것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몸이 죽겠으니 사실 레슨을 대충 받은 적도 많았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만두게 된다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로 마주하고 나니 눈물이 줄줄 나더라구요.
한참을 펑펑 울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엄마 차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차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 무언가가 나를 막 조여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게 저의 첫 번째 공황발작이였어요.
이후로 몇 번의 발작을 겪었고 지금은 너무나 잘 지냅니다.
사실상 완치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월급 루팡을 꿈꾸며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이예요(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요..)
몇 년 전에 저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몇 달간 병가를 냈어요.
저는 그 분과 일하는게 좋긴 하지만
부서 업무가 너무 힘들다보니 다시 저희 부서로 돌아오지 말고
좀 더 맘 편한 곳으로 갔으면 했는데
병가를 마치고 다시 저희 부서로 돌아오더라구요.
팀장님의 배려로 그나마 조금 한가한 파트로 배정받기는 했지만요.
다른 분도 최근에 공황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대요
자랑할 일도 아니고 그냥 남몰래 조용히 약을 드시고 계셨나본데
얼마 전에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계시는걸 제가 보고야 말았어요.
깜짝 놀라서 왜 그러세요!!! 하고 달려갔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공황이 온 것 같아..."하시더라구요.
아마 두 분 외에도
우리 부서에는 몰래 상담을 받으러 다니거나 약을 드시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잘 지내지만 저도 한때 발작을 겪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게 뭔가 싶었어요.
각자의 사정이란게 있으니 함부로 쉬어라 말아라 말하기도 어렵더라구요.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
내 건강을 해치더라도, 일이라는 것.. 쉽게 그만 둘 수 없는거겠지요.
부디 힘든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
이 상황을 잘 극복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를
두 손 모아서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빨리 회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