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친구가 공황장애로 힘들다면서 자꾸 우리집에 와요;;

신랑 친구 ㅊ씨는 아직 솔로입니다. 신혼 때 부터 울집에 자주 왔었어요. 신랑이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기에 한 두번 집에서 놀다 갔는데요, 문제는 여친이 생기고(그 여친도 신랑친구) 둘이 함께 주말마다 우리집에서 와서 토욜 자고 일욜까지 놀다 갔습니다. 솔로였던 ㅊ씨가 여친이 생기자 어떻게든 결혼으로 연결시켜주고 싶었던 신랑이 내 눈치를 보면서도 집으로 데려와 밥 사주고 잠자리 내어주고 놀아주고 한 것이죠.

ㅊ씨는 돈이 없었습니다. 마흔이 된 나이에도 모아놓은 돈은 없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무기로 스스로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친구들의 작은 도움을 기어코 이루어내는 사람이었어요. 더구나 자신의 능력을 키워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는데도 자신이 없다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점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관리하는 업체 여러군데에 면접을 보도록 몇 번이나 권해도 생각해보겠다 하고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어요. 친구를 딱하게 생각하는 신랑의 마음이 갸륵하기도 하고 저도 ㅊ씨가 잘 되면 좋은거지 생각해서 주말마다 그 커플이랑 함께 놀아주면서 그냥 신랑 하는대로 따라 주었어요.

문제는 그렇게 두 달 이상을 우리집에 주말마다 와서 자고 갔다는 점입니다. 이젠 눈치도 말아먹은 신랑과 주말마다 별채처럼 울집에 들르는 이 커플은 호의를 권리처럼 휘두르며 당연하다는 듯 토욜마다 울집에 왔어요. 신랑에게 그만 오게 해라 얘기했지만 돈 없는 커플이 오죽하면 저러겠느냐며 좀 봐주자 그러더군요. 저한텐 얄짤없는 인간이 어쩜 저렇게 집 밖으로는 친절하고 관대한지,, 배신감 마저 들 때 쯤, 그 커플이 헤어지는 것을 끝으로 저희 집 여관놀이도 끝이 났습니다.

그러고나서 시간이 흐르고 들리는 얘기로는, ㅊ씨는 여전히 솔로로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올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지금의 처지만을 비관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자신감 없고 여전히 괴로워하면서요. 그러다 공황장애가 왔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심했는지 신랑이랑 친구들이랑 ㅊ씨의 얘기를 의논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날 신랑이 주말에 ㅊ씨가 놀러온다고 자고 간다고 동의를 구하길래 그러라 했습니다. 제 친구도 한 번 씩 자고 가기도 하고 ㅊ씨 오랜만이라 저도 그동안 좀 안쓰러웠거든요. 근데 이 사람은 참으로 내가 베푼 호의가 후회되도록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추운 토욜 아침 느긋하게 늦잠을 자는데 8시30분에 신랑에게 전화를 해서는 시외버스터미널에 왔으니 데리너 오라는 것이었어요. 신랑은 주섬주섬 잠옷 입은 채로 나가 집으로 데려 아니, 모셔오더군요. 그 시간이 오전 9시 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잠이 모자라다며 다시 누워 자는 신랑이나, 결혼 한 친구집에 아침 9시부터 죽치고 앉아 있는 친구나 제정신인지?? 깨어있는 건 ㅊ씨랑 저 둘 뿐인데 우리 둘이서 뭘 하겠어요? 너무 어이가 없고 짜증이 나서 제가 티를 좀 냈나 봅니다. 눈치가 있긴 한 건지 쇼파에 앉아 혼자 티비 보는 ㅊ씨를 두고 저는 근처 카페에 가서 오전시간을 보냈습니다.

ㅊ씨는 그렇게 이틀을 자고 월욜에 신랑이랑 회사까지 같이 출근해서 하루종일 신랑이랑 있다가 갔습니다. 지금은 직장없이 집에서 쉰다고 해요. 집에 혼자 있기가 싫다고 했답니다.(신랑 말로는 집에 귀신이 있는 것 같다고 했대요,,) 그 얘긴 들으니 또 딱하기도 하고,, 집이 그렇게 싫으면 계약이 끝나지 않았어도 다른 세입자로 대체해주고 다른집을 구하든지 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는데 스스로 그럴 생각은 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긴 하지만 공황장애 때문인지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보다는 어쩔수없다는 그런 체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ㅊ씨는 이번 주말에 또 우리집에 예약했습니다. 신랑도 슬슬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때도 됐죠. 힘들다 힘들다 계속 들어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도 겨우 일욜 하루 쉬는데 이 눈치없는 친구랑 황금같은 일욜을 봉사해야 하니까요.

제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죠? 스스로 친구에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걸 신랑이 모르는 건 아닙니다. 냉정하게 대하여 상처줄까봐 미안한 마음, 본인이 나쁜사람 되는 게 싫은 마음 그런 게 얽혀 입 밖으로 꺼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이지요.

ㅊ씨를 생각하면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오죽할까,, 싶어요. 그치만 스스로가 상황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이 없으니 응원하던 저도 이젠 좀 그만하고 싶어집니다;;;;

ㅊ씨, 미안하지만,,, 우리가 나서더라도 본인의 의욕이  없으면 어떤 병도 이길 수 없어요. 의지를 가지고 다시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 땐 집을 피해서 도망치듯 울집으로 오지 말고 진짜 친구랑 하루 즐겁게 놀고 싶어서 우릴 찾아주셨음 좋겠어요.

마음으로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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