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고민상담소 주제로 올라올 때마다 소환되는 그 분입니다.
그 동안에도 열거하도 힘들만큼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그 사이에 두명이 더 퇴사를 했답니다.
그 분과 일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매일 벌어지는 일인데
몸은 적응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점점 더 지쳐만 가네요.
일단 성인 ADHD의 증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볼께요.
① 집중과 집중 유지의 어려움
- 아주 간단한 일임에도 일을 끝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 일을 끝마치지 못합니다.
- 세밀한 부분을 간과하는 실수가 잦습니다.
- 별로 상관없는 광경이나 소리 때문에 쉽게 산만해집니다.
- 한 가지 일을 하다가 어느새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② 과도한 집중
- 책, TV, 컴퓨터 등 흥분과 보상이 있는 일에는 몰입합니다.
-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일과 시간 개념을 잊어버립니다.
③ 비조직화와 건망증
-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합니다. 방, 책상, 차가 매우 어지럽습니다.
- 일의 예상 소요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만성적으로 지각합니다.
-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거나 계획적으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제자리에 놓지 않습니다.
④ 불안정함 혹은 끊임없는 활동
-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일을 추구합니다.
-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 쉽게 지루해합니다.
⑤ 충동성
- 다른 사람의 대화에 자주 끼어듭니다.
- 자제를 잘 못합니다.
-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생각을 그대로 내뱉습니다.
-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행동합니다.
- 중독의 위험이 있습니다.
⑥ 감정 조절의 어려움
- 자존감과 성취감이 낮습니다.
- 비판에 대해 과민 반응하며 쉽게 좌절합니다.
- 감정 기복이 심하고 조급합니다.
- 예민하고 폭발적으로 화를 냅니다.
그 분이 해당되는 부분에 색칠을 해보았는데, 이 정도면 ADHD가 맞는거겠죠?
사실 감정에 관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어서 감정조절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공식적으로는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뜬금없이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런 유형은 아니시거든요.
하지만 색칠해지지 않은 부분보다 색칠된 부분이 많은 것을 보니
ADHD가 확실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분은 정말 워커워커워커홀릭입니다.
이제 그 분이 보낸 메일 발송 시간이 세벽 세네시인 것은 놀랍지도 않아요.
퇴근 후 뿐만 아니라 새벽에도 어찌나 전화, 문자를 하시는지
저는 이 회사를 다닌 뒤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삽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제가 전화를 바로 받지 않거나 메시지를 바로 읽지 않아도 화를 내지는 않으세요.
왜냐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고 계시거든요......
잠을 안 주무시는건지,
자다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서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시는건지..
아침에 눈 떴을 때 그 분의 메시지가 와 있으면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짜증부터 나요.
아직 침대 안인데 벌써 회사에 출근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 분이 회의에 참석하는 한 저희 팀은 회의가 무의미합니다.
한 가지 안건을 논의하려고 회의를 시작하면
갑자기 "아!! 그거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났어요!!"라며 주제를 바꿔버립니다.
기존의 안건을 접을 수도 없는 상황인데 회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하시는거죠.
그 분의 목소리만 들리는 회의실에서 팀원들은 모두 눈만 굴리고 있어요.
마음 속으로는 다들 아... 오늘도 회의 다시 해야겠네....하고 생각하고 있을거예요.
그나마 그 분이 실무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그 분의 프리토킹 시간이 끝나고 나면 실무진들끼리 회의 시간을 다시 잡는게 부지기수입니다.
실무진들끼리 일정이 안 맞아서 카톡으로 회의한 적도 너무 많구요.
ADHD가 정리정돈이 잘 안된다고 하지요?
TV에 가끔 집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모아두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이 분의 방, 이 분의 차... 정말 엄청납니다.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과 경쟁해도 이길거예요.
저희 회사는 모든 문서가 "거의" 전산화 되어 있어요.
"전부"가 아닌 "거의"라는 표현을 쓰는 건 이 분 때문이예요.
이 분은 이상하게 죽어도 종이문서를 고집하시거든요.
그래서 저희 팀은 전산화도 시키고 종이로 인쇄도 해두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요.
물론 자료 소실의 문제도 있으니 디지털이라도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 분 방에 쌓여있는 서류더미와 책자들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분의 방이 10평이라고 하면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한 평도 안될거예요.
대부분이 보존기한도 끝난 자료이고 저렇게 쌓아두면 어차피 찾지도 못할텐데,
왜 저렇게 쌓아두는건지 모르겠어요.
대부분 그 분의 방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피치못하게 들어갈 상황이 생기면
몸을 꾸깃꾸깃 잘 접어서 들어가야 해요.
서류더미를 건드렸다가 서류더미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거든요.
책상 위요?
서류더미는 고정, 머그컵은 기본 3개쯤은 나와 있고 테이크아웃컵도 모으시나봐요.
테이크아웃 컵도 거의 다 차 있는 것, 1/3만 마신 것, 거의 다 마신 것 아주 가지고루입니다.
청소해주시는 여사님께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소연을 하시길래
저 방은 건드리지 마시고 쓰레기통만 비워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의 주특기는 사내 전화 걸면서, 핸드폰 걸면서, 메시지 보내기입니다.
제 자리 전화가 울려서 받으려고 하면 전화가 끊기고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요.
핸드폰 번호를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전화가 끊기고 사내 메신저가 알람이 울립니다.
메신저를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그 분이 방에서 뛰쳐나오시며 "OO씨 자리에 없어요?"를 외치시죠.
혹은, 사내전화->핸드폰->메신저 턴이 끝나고도 그 분이 뛰쳐나오지 않으시면
따르릉, 하고 제 옆자리 동료의 전화가 울립니다.
이 일은 이제 저희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 제가 전화를 받지 못하면
옆자리 동료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그 분의 또 다른 특징이 있어요.
정말 자기 할 말만 하시는 분인데, 주어+목적어를 말을 안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시죠.
아니, 어쩌면 주어+목적어를 말을 하셨는데 본인 방에서부터 할 말을 하면서 나오시곤
사무실 밖으로 나가시면서 말을 마치시니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쨋든 우리는 그 분이 남긴 몇몇 단어의 조합으로 추론을 해야 해요.
정말, 너무나도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방에 들어갈 때는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최대한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려고 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그냥 그 분께 마이크랑 스피커를 달아놓는게 낫지 않냐는 슬픔 섞인 농담도 하고 있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건 말해 뭐할까요.
하루에 500번은 왔다갔다 할거예요.
그 분이 정말 바쁜 분인건 맞아요.
하지만 저의 생각으론 머리로 동선을 정리하고 한번에 일을 처리하면
이렇게까지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거든요.
그냥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생각나는대로 몸을 움직이시는 것 같아요.
그 분은 어떤지 몰라도, 보고 있는 팀원들은 괜히 불안해지고
보고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분이 자리에 계속 안계시니까 업무가 지연되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이 분은 업계에서 유명한 분이예요.
사실 저도 이 분 때문에 이 회사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요.
가끔 이 분을 보면서 '저런게 천재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이 있답니다.
이런 이유로 99.9% 지각을 하는데도 사장님도 눈 감아주시는 듯 하고요.
(사실 수 십년간 지각하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고쳐지지 않아서 사장님도 포기하셨어요.)
인성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저도 오래 전에 회사를 그만 뒀을거예요.
하지만 인성이 나쁜건 아니예요.
다만, 보는 사람의 혼까지 쏙 빼놓는 산만함이 우리 모두를 미치게 만드네요.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